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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회개혁, Re-Form or Next-Form (평화나무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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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4-12-06 17:44 / 조회 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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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그리 망해버려라.” 

 

이 책을 쓰기 위해 연구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여기에는 남녀도 노소도 지역의 차이도 없었다. 한 청년은 이렇게 ‘싹 다 망하는 것’만이 이 사회에서 꿈꿀 수 있는 유일한 ‘공평함’이라고 말했다.” 

 

엄기호 님의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창비, 2016) 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싸그리 망해버려라” 

 

전쟁이든 뭐든 모조리 망한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세대의 열망이 담겼다. 이런 세상은 망해도 싸다고 생각하는 세대의 등장이 놀랍지도 않다. 그만큼 사회의 질서와 가치가 하락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오늘의 문화와 미디어를 분석하는 전문가들에게서 ‘회빙환 ’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흙수저로 태어난 현실과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한탄하는 세대의 탈출구처럼 보인다. 과거 어디쯤으로 다시 돌아가 다른 사람으로 다른 인생을 살고자 하는 바람이 그대로 드러난다. 내 삶을 ‘리셋’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버튼을 누르고 싶은 슬픈 현실이다. 

 

이런 현상이 어디 사회뿐이겠는가? 교회 안에서도 이런 부류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한국교회는 이제 끝났다’거나 ‘아예 교회가 다 망했으면 좋겠다’라는 발칙해 보이는 말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도무지 멈출 생각이 없는 재정 횡령 사건과 성 문제, 부와 권력의 세습을 지나 탐욕과 비리의 온상이 된 교회 시스템, 의사소통은 찾아보기 어렵고, 가진 자들이 더 가지기 위한 악다구니를 치는 판이다. 내 편이 아니면 그르렁거리는 위협을 가하는 현실에서 ‘교회에 희망을 품는 것조차 가망이 없다’고 말한 어떤 젊은이의 이야기가 맞는지도 모른다. 

 

‘고쳐쓰기’보다 ‘리셋’이 편하다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교회 문제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개혁과 변화의 외침에도 이렇다 할 변화가 없는 것 같은 현실을 보며 젊은 세대는 직감적으로 판단한 듯하다. 이렇게 해서는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고쳐쓰기에는 늦었다는 것 아니, 고쳐도 제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새로운 질서와 출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제도권 교회에 대한 희망을 거두고 아예 다른 대안과 신앙의 양식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고 제안한다. 이는 디지털과 온라인으로 새로운 길을 떠나려는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미처 알지 못했던 교회의 가치와 존재에 대한 상상을 자극하니 말이다. 

 

교회개혁이라는 말에는 교회 전통과 구조를 존중하면서도 그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크다 할 수 있다. 이어온 교회가 사회적 책임과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도록 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일은 변화의 속도가 느리며, 저항에 대응하는 에너지도 많이 소모된다. 그렇기에 전통교회의 권위적인 면을 해소하고, 사회와의 거리감을 줄이며, 유연한 모습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해 보인다. 고쳐쓰기보다는 리셋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고쳐쓰기냐, 리셋이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둘 중 어느 하나가 우월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회복 불가능해 보이는 교회 문제 앞에서 다른 목적과 방향을 정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에 대해 무조건 우려를 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렇다고 앞뒤 가리지 않고 교회의 전례와 전통을 부정하는 방식도 아슬아슬하다. 

 

‘퍼블릭(Public)’보다는 ‘퍼스널(personal)’한 교회와 신앙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에 기반한 전통적 교회가 개혁되고 변화하기 위해서는 높은 비용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유연함이 부족한 교회의 특성상 기존 구조에서 이익집단이 보이는 저항도 거세다. 그렇다 보니 퍼스널라이제이션(Personalization)의 특성을 살린 교회와 일상 신앙이 더 돋보인다. 느슨하면서도 밀도가 있는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전례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새로운 교회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한다. 

 

오늘날 ‘개인화’한 신앙이 ‘좋은가’ 또는 ‘나쁜가’를 다루는 것은 교회의 본질을 왜곡하기 쉽고, 새롭게 등장하는 세대에 대한 부족한 이해를 스스로 드러내는 꼴이다. 

 

‘공공성’, ‘공공화’, ‘공동체’의 의미가 과거에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강한 연대와 연결을 기반하고 있었다. 공통된 목표를 얻기 위하여 각자 책임을 지고 희생과 헌신의 삶이 당연히 여기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도 개인의 일상이 존중받아 차이가 차별되지 않고, 구별이 구분되지 않는 상호 호혜적 일상을 기반으로 ‘공공성’, ‘공공화’, ‘공동체’를 이해하고 있다. 

 

많은 성도가 전통적 교회에서 가지는 의무나 규칙들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는 이를 해석하고 확인하면서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교회와 공동체에 소속한다는 것이 과거에는 강요된 소속감에서 비롯한 무게감이 주를 이루었다면, 지금은 필요에 따라 가치와 신앙 경험을 나누며 성경과 일상을 탐구하는 네트워크 형식의 교회로 의미 있게 모이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공공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해의 공공성이 존재한다. 

 

전통적 교회가 관심 있게 해오던 ‘사회적 복지’ 개념의 공공성을 넘어서서 새롭게 등장하는 교회는 더 큰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한다. ‘사회적 정의’, ‘사회적 공정’, ‘인권 보호’, ‘기후 환경’ 등 다양한 공공의 선을 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다. 

 

교회의 Next-Form을 시도하는 성도에게는 전통적 교회가 폐쇄적 답답함과 시대의 담론을 담지 못한 곳으로 생각하기 쉽고, 교회를 Re-Form 하기 위해 노력하는 성도에게는 새로운 시도가 너무 위험한 것은 아닌지 염려하기도 한다. 

 

‘서사’보다는 ‘키워드’로 정리된 신앙과 일상 

 

‘숏폼(Short-form)’의 시대다. 디지털의 발전과 스마트폰의 보급은 콘텐츠 소비문화를 바꾸었다. 노래나 유튜브로 빨리 돌려서 듣거나 시청한다. 긴 소설이나 두꺼운 책도 요약본으로 대체한다. 요약만 보더라도 책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듯 이야기한다. 3~4시간을 봐야 하는 영화는 30~40분으로 쪼개어 몇 편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유리한 시대다. 

 

빠르게 돌려보고, 요약본을 살피며, 숏폼으로 장편영화를 갈음하는 것이 서사와 지식을 충분히 습득하지 못할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시간의 가성비를 뜻하는 ‘시성비’라는 말이 괜히 등장한 것이 아니다. 빠른 시간 동안 ‘키워드’로 정리하고, 이후 다시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가는 방식이 유효한 시대가 되었다. 

 

교회와 신앙도 이런 흐름에 올라탔다. ‘키워드’라는 말이 교회와 신앙에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키워드로 읽는 교회’, ‘키워드로 읽는 신앙’ 등의 책이 주목을 받는다. 성경도 키워드로 정리하여 습득한다. 

 

전통과 역사가 가져다주는 서사적 관점도 키워드로 재정리하여 보급하고 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키워드는 이제 ‘하나님 나라 복음’, ‘선교적 교회’라는 키워드 안에서 세련되게 바뀐다. 뜯어보면 현대적 언어를 사용하는 얇은 표층의 부흥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들이 등장했고, 이들의 숏폼이 온라인을 떠돈다. 

 

신앙의 키워드를 따라 유사한 사람들의 ‘끼리끼리’ 문화를 가속한다. 그것이 개혁과 변화의 키워드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예도 많다. 서사를 통해서만 이해되는 다른 이의 일상과 존재를 키워드로 분류하고 단선적으로 판단해 버리는 신앙 형태가 안타깝다. 

 

Re-Form or Next-Form 

 

교회개혁은 과거를 반성하여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도에게 너무 뻔하지도 않아야 하며, 전통을 이어가려는 성도에게 너무 낯설지도 않아야 한다. 분명 새로운 모양의 교회와 전례 그리고 성도가 등장했으며 이후로 많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와 전통을 잇는 성도 및 교회와 함께하면서 공존하고 순환해야 한다. 

 

고쳐쓰기와 리셋 중 어느 것이 좋으냐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화와 개인화의 대립을 논하려는 것도 아니다. 서사는 중요하고 키워드는 부실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과 새로움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시대를 돌이켜 보면서 교회의 개혁과 변화가 일순간에 이루어진 것처럼 시간과 시대를 압축해서 이해하려고 하는 듯하다. 하지만 종교개혁사는 어느 한 정점에서 일순간에 이루어진 사건이라기보다 한 시대를 지나면서 확장되어 자리 잡는 여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교회개혁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면이 있다. 교회는 기대보다 더 천천히 바뀌어 간다. 이러는 와중에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등장하고, 영향력도 가지게 되었다. 바라는 것은 새로움이라는 변주가 소음과 탁함이 되지 않기 위한 탄탄한 기본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교회와 신앙의 지속성을 가지기 위해 전통에 대한 넓은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 

 

그 결과, 전통적 교회의 개혁과 새로운 교회의 성장을 통한 선순환의 구도가 한국교회에 마련되기를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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