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연재] 나의 신앙 성장의 힘, 함께 읽고 쓰고 사랑하기 (뉴스앤조이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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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5-07-15 15:35 / 조회 1,367 / 댓글 0본문
나에게 주체적 신앙이란?
교회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많은 이들이 오늘의 신앙인들은 주체적 신앙이 없거나 부족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신앙인들이 주체적 선택을 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주체적 신앙의 결단과 책임에 따른 복잡하고 고달픈 피로감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시간과 육체 에너지를 강탈당한 현대인에게 주체적 신앙은 마치 더해진 짐처럼 불편한 것으로 인식되는 듯 보인다.
나에게 '주체적 신앙'이란 무엇인가? 나에게 '주체'의 문제는 나와 세계의 충돌과 갈등, 타자의 자극과 접촉, 경험의 다양한 층위 안에서 어떻게 나를 규명해 낼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오늘날 주체의 신앙이 병들었다면, 그것은 세속의 가치와 철학의 영향으로 예수의 세계관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자리에 자기 자신을 세워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의 세계관이 환대와 섬김과 사랑이라면, 주체적 신앙은 타자의 얼굴 앞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형성되는 신앙이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삶의 자리 어디서든 실현되지만, 나는 교회 공동체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오랜 시간을 돌아 교회로 돌아왔다. 교회는 여전히 전근대적이고 세속화의 물결은 더 깊이 침투했다. 그럼에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희망을 보는 까닭은 '예수의 세계관'을 배우고 닮아 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나라를 사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자유와 타자를 향한 환대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타자의 얼굴 속에 계시된다"라는 레비나스의 말은 신이 존재론의 대상이 아니라 '윤리적 관계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곧 타자를 향한 책임을 지는 자리이다. 나에게 신앙은 교리적 수용과 의례의 수행에 앞서 관계이자 책임이다. 그래서 나를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던, "타자와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은 가능한가?"라는 물음은 수정되어야 했다. 내가 구할 것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고 설명하는 지식과 판단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만나려는 마음, 그리고 나를 찾아온 타자에게 내게 허락된 것으로 책임을 다하려는 고백의 신앙이어야 한다. 매 순간 떨리는 마음과 고독하고 불안한 선택의 자리에서, 부르심을 따라 길을 찾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주체적 신앙이다.
함께 읽기 공동체, '김근주 읽기'와 신앙 성장
'김근주 읽기'는 신학자 김근주 목사의 저서를 함께 읽는 독서 클럽으로, 2022년 10월부터 현재까지 약 2년 7개월가량 160여 명이 함께해 왔다. 모임은 교단으로부터 부당한 외압과 탄압을 받은 김근주 목사를 보호하고 지키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복속된 교권의 이해관계로 인해 한 인격이 훼손되고, 그가 일군 소중한 신학적 자산을 말살하려는 폭력 상황 속에서, 나는 저항의 방식으로 '함께 읽기'를 선택했다. 한 신학자의 말과 글과 행동을 바르게 읽고 소화하려는 정직함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상식과 양심이라고 생각했다.
이 모임은 내가 보낸 한 장의 레터에서 시작됐다. 2022년 9월 8일 일산은혜교회 이광하 담임목사님의 SNS 글을 보고 마음에 찔림이 있었다. 여러 날의 고민과 궁리 끝에 '김근주 읽기'를 생각했고, 그 실천 방식과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해 자료를 찾고 실행 방법에 골몰했다. 이 일을 구상하던 그 열흘은 간절한 앓음과 기도의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제안을 받아 줄 한 사람이 없다면, 의미도 가치도 없는 시도였을 것이다. 레터를 전송하며 떨리던 마음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나의 곁에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의 마음이 닿고 연결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의 모임은 단순하다. 읽을 책을 정하고, 함께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고, 궁금한 것을 저자에게 묻고 듣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단순한 반복이 매번 다르고 새롭다. 혼자 읽어도 충분할 것 같았던 텍스트는 상호 교차와 순환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곤 한다. 각자가 우리로 이어지면서 더 좋은 삶을 모색하고 '책-사람-세상'을 이해하려는 해석 공동체가 된다. 함께 읽기를 하는 지난 2년 7개월 동안 나는 교회 안과 밖, 한국과 외국, 사역자와 평신도, 어르신과 청년, 직업과 나이가 다른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우리는 함께 책을 읽으면서 성경을 더 풍성하게 이해하고, 오늘의 현장에서 어떻게 복음의 공공성을 지향하고 실천할지 모색했다.
무엇보다 함께 읽기의 장에서 나는 깊은 나눔과 교제, 마음의 열림과 생각의 교환이 신앙을 자라게 하는 비결임을 배웠다. 신앙의 성숙은 끊임없는 상호 교류와 대화, 지역과 경계를 벗어나려는 자기 개방의 시도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개교회주의의 폐쇄성, 고착적 비민주성, 악습의 제도화, 무엇보다 사람의 깊은 영성을 감각할 수 없는 기계적 시스템화는 개신교가 극복할 과제이다.
주체적 신앙은 다양한 모순적 상황에서 깎이고 다듬어지며 자라난다. 이는 고독한 홀로서기가 아니라, 서로를 주체적 신앙의 길로 나아가도록 부축해 주는 대화의 공동체 속에서 이뤄진다. 함께 길을 걷는 여정이다. 그런 까닭에 나의 신앙 성장의 힘은 결국 타인과 함께 읽고 쓰고 사랑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확신할 수 있다.
소비자주의 교회에서
하나님나라 이야기 생산자로
오늘의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안팎으로 곱지 않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는 시장의 논리가 횡행하고, 효율과 이익 중심의 질서가 만연하다. 목회자와 교회 리더들의 성장주의 가치관, 더 나은 서비스와 편안함을 요구하는 교인들, 유수의 사회적 프로그램과 쾌적한 문화의 수혜자가 되려는 소비자주의는 개혁도 변화도 만들 수 없다.
나는 우리 신앙인들이 모두 각자의 하나님나라 이야기를 써 나가길 기대한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형성될까? 잘 짜인 프로그램으로 완성될까? 많은 정보와 데이터가 쌓이면 좋은 이야기가 나올까? 무수한 사람이 모인 대형 집회가 역사에 남는 이야기가 될까? "이야기는 의미의 밀도를 높여 가는 과정이다"라는 말이 있다. 의미의 밀도를 높인다는 것은 끊임없이 반복하고 재배치하고 재맥락화하는 과정이다.
성경의 이야기, 초대 교회의 이야기, 한국 초기 신앙 공동체의 뜨거운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계속 이어진다. 이야기는 인물과 사건에 우리를 밀어 넣는다. 이야기는 상상하게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과 감정의 동기화를 이루고, 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동화와 일치의 경험에 이르게 한다. 하나님나라 이야기를 잃어버린 교회는 결코 좋은 교회일 수 없다. 오늘의 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모두 하나님나라 이야기를 써 나가는 주체라는 사실이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과 세상의 사람들은 여전히 교회가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지성의 공동체이며, 가난한 자들에게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이길 바랄 것이다. 표면을 휩쓸고 있는 나쁜 징후와 교회의 썩은 더러움이 걷히면, 바른 것을 옹호하고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믿음의 씨앗들이 자라나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강경희 / 일산은혜교회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