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파고다공원 같은 총회와 신학교…과도한 성비 불균형은 기괴하다 (뉴스앤조이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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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4-10-15 13:21 / 조회 246 / 댓글 0본문
여성으로서 '목사', '박사', '교수'로 불리는 필자는 이러저러한 자리에서 남성 목사·박사·교수들을 만나게 된다. 한결같이 좋은 분들이고 필자에게 과분하리만큼 친절하다. 그런데 그 가운데 일부는 교단 정책에 따라 자기 교단의 딸과 아내와 누이를 차별하여 목사·장로·교수·집사가 되지 못하게 하거나, 그런 상황을 용인하고 계신 것 같다. 그처럼 신실하고 현명한 분들이, 예수님과 달리 자기 교단 여자들을 비하하는 일을 수수방관하시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딸과 아내와 누이 들을 총회·노회·당회의 문밖으로 밀어내고, 자기들만 안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채 파이를 결정하고 나누어 갖는 남자들이 있다. 다른 교단 여자들은 집사·목사·장로·교수로 활약한 지 오래인데, 유독 자기 교단 여자들만 그런 직분을 받지 못하도록 헌법으로 원천 봉쇄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김종혁 총회장) 총회가 '여성' 강도권을 신설하되 남성 강도권과 구분한다니, 마치 불교가 비구니에게만 팔경계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성 강도권을 헌법에 명시하여 실행하기까지 3년 정도나 걸린다고 한다.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들이 자기 집안 여자들을 헐벗은 옷차림(직분)으로 세상에 몰아내어 사회적·경제적·심리적으로 주눅 들게 만드는 상황이다.
우리 주님은 만연한 횡포와 부조리에 맞서 남녀가 모두 하나님의 형상임을 일깨우고자 십자가를 참고 하나님나라를 끌어내리셨다! 여자가 사람 수에 들지 못하던 시절에 여종들을 당신의 나라 일꾼 삼으려 초대하고 가르치셨다. 생소한 은혜에 감동한 여자들은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저 위험천만한 십자가 형장까지 주님 곁을 용감하게 지켜 냈다. 그 여종들에게 우리 주님은 바람처럼 휘몰아치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며 역사하시는 성령을 아낌없이 선물하셨다.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와 사랑받는 제자가 빈 무덤에 찾아왔을 때 보이지 않으셨으나, 새벽까지 주님의 동산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인 마리아에게 처음 보이셨다(요 20:6-16). 부활의 첫 소식을 선포하고 설교하는 영예로운 권한을 여종에게 맡기려고 하신 것이다. 오늘날 배우고 익힌 남종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일을 우리 주님은 이미 2000년 전에 율법주의자들 앞에서 행하셨다. 그 옛날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도 남종들과 여종들이 모였다. 하늘로부터 성령이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셨을 때, 베드로 사도는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선포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중략) 내 남종들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행 1:13-14; 2:1-3, 14, 16-18).
필자가 속한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류승동 총회장)도 2004년 여성 안수가 허용되기까지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쳤다. 필자의 경우, 전도사 시취부터만 계산하더라도 무려 18년의 전도사 사역 끝에 2011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인고의 나날을 보내며 고 문수영 목사님을 자주 떠올렸다. 문수영 당시 전도사님은 남녀 종이 대등하게 부르심 받았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여성안수추진위원회를 결성하셨고, 남녀 동역자들과 전국을 오가며 교역자회·교수회·여전도회·지방회·총회의 결집을 일궈 내셨다. 목사님은 윤락 여성, 넝마주이 자활대원, 무의탁 노인을 상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역을 오래 하셨고, 자랑스러운 이대동문상과 서울신대 동문상을 수상하셨다.
아직 여성 안수가 허용되지 않는 교단들에 속한 여성들에게도 생전에 여성 안수의 길이 열리기를 간구한다. 그런 교단에 속해 있거나 거쳐 간 여성들 가운데 신실하고 탁월한 이들을 알고 있다. 예컨대, 유승혜 박사님은 총신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명문 에모리대학교에서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임상 심리 절차를 마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 박사님은 합동에 머물지 못하고 미국감리회(UMC)로 옮겨 목사 안수를 받았고, 미국 교회 종신직 담임목사로 헌신하고 계신다.
고 황영자 박사님을 처음 뵌 곳은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정기 논문 발표회였다. 중년을 훌쩍 넘긴 고상한 여성이 학회에 처음 오셨는데, 누구보다 더 죄가 많은 사람처럼 지나치게 공손하셔서 뵙기에 죄송스러울 정도였다. 필자에게 학회는 집처럼 편안했으나, 선생님께는 낯설고 조심스러웠나 보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회식 자리에서 필자 옆에 앉으셨다. 선생님은 여자가 기도와 예언(설교)을 할 수 있는지, 여자의 머리가 남자인지,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진지하고 절박하게 물으셨다(고전 11:3-15). 당황한 필자는 제대로 답을 드리지 못했으나, 몇몇 교수님은 이미 여러 차례 같은 질문을 받으셨는지 황 선생님과의 대화를 꺼리시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모 대학 총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황영자 선생님이 총신대에서 여성 최초로 신약학 박사 학위를 받고 국회 포럼에서 논문 발표회를 하니, 논찬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고린도전서 11장에 관한 논문이었다. 순간 필자가 여성으로서 한국교회에서 겪은 일들과 한국교회 여자들의 곤경이 교차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 슬픔과 회한이 솟구쳤다. 재직 중인 학교에 외출계를 내고 선생님의 포럼에 참석했다. 근거 없이 여성 편을 들면 여성들에게 실례가 되므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논찬했다. 현장에는 진실한 주님의 남종들과 여종들로 북적였다. 이를 계기로 필자는 황 박사님을 한국신약학회 좌장으로 모셨고, 선생님은 투병 중에도 어렵게 걸음 하여 멋지게 좌장을 수행하셨다. 이후 황 박사님은 지병으로 주님 품에 안기셨으나, 그분 덕분에 만난 예장합동 소속 여자들은 필자에게 정다운 벗이 되었다.
창세 전부터 하나님은 남종과 여종을 하나님나라 일꾼으로 부르셨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든가, 여자들 머리를 가리라든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자코 있으라는 말씀들은 오늘날 교양 넘치는 한국 여자들을 비하할 목적으로 쓰인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다양한 시대 상황과 오묘한 진리가 담겨 있으므로 언뜻 보기에 말씀들이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예컨대, 믿음으로 충분한지, 아니면 행함까지 필요한지(롬 4:5; 약 2:14-18), 하나님나라가 벌써 임했는지, 아니면 더 기다려야 하는지(눅 11:20; 행 1:7; 3:21), 세례 요한은 엘리야인지, 엘리야가 아닌지(마 17:12-13; 요 1:21), 우리는 섣부르게 속단할 수 없다. 그런 긴장이 성경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성령께서 상황과 맥락에 맞게 말씀을 밝혀 주시기 때문이다.
과도한 성비 불균형은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필자는 30대에 무심코 파고다공원에 들어섰다가 무수한 눈길이 일제히 필자에게 꽂히는 것을 체험하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아름다운 고궁인 줄만 알고 들어섰는데, 그곳은 주로 남자들이 모여 시간을 보내다가 끼니때가 되면 무료 급식을 받는 곳이었다. 입구에 안내문이라도 붙여 두었다면 처음부터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신학교 교수진과 총회·노회·당회는 남성 일색이어서 파고다공원을 방불케 한다. 이를 바로잡고 딸들에게 길을 열어 줄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은 어디 계실까?
성령으로 거듭나 예배하는 창조질서가 니고데모에게 생소할지라도 사마리아 여자에게는 복음이 되어 씨앗처럼 세상에 퍼졌다. 그처럼 곤경에 처한 여자들을 차별하지 않고 초대하신 예수님은 남존여비의 헤롯 성전을 헐라고 하셨다. 사흘 만에 예수 성소는 일어섰고, 하나님나라 급행열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 열차가 한국교회에 도착했으니, 늦기 전에 올라탈 일이다! 남존여비의 모세 율법(레 27:2-7)을 버리고, 자유자의 율법(약 2:12)을 따르자! 주님이 지어 주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옷(갈 3:28)으로 갈아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