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회 리더라면, 질문을 던져라 (평화나무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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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5-08-18 11:15 / 조회 1,101 / 댓글 0본문
교회 개척(start-up)의 시기이거나, 또는 교회 개혁과 변화(Re-build)의 시기를 지나는 동안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원인이 겹치면서 혼란의 시기를 맞이한다.
보이는 목표가 같았을지라도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 있어서 갈등을 겪기도 하고, 같은 목표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목표가 아님을 알게 되어 등을 돌리기도 한다.
한 마음으로 교회를 개척한 줄 알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달라 실패하기도 하고, 세대 간 갈등이든, 세대교체든 교회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해 보려 하지만, 밀려나지 않으려는 사람과 새롭게 주도하려는 사람 사이가 틀어져, 예상치 못한 혼란에 소란스러워지기도 한다.
이런 시기에는 교회 ‘리더’의 역량이 특히 중요하다. 중재하고, 경청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노력으로 갈라진 틈을 메꿔가야 한다. 격한 반응을 쏟아내는 성도와 만나야 하고, 리더를 거절하고 무시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과정이 어디 쉬운가. 아끼고 신뢰했던 이로부터 받게 되는 거절감은 사역과 교회에 대한 무기력함과 절망감에 짓눌리게 한다. 그럼에도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리더가 필요하고, 리더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지난 글에서 ‘리더십’은 목회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며, 교회에서 일정한 역할과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갖추어야 할 자질임을 간략히 이야기했다. 교회의 ‘리더’가 꼭 목회자일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목회자는 안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라도 교회의 방향과 결정에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가 곧 ‘리더’이며, 그에 걸맞은 소양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의 리더라면, 그가 목회자이든 아니면 다른 직분의 사람이든 상관없이 교회의 복잡한 위기와 갈등을 헤쳐 나갈 수 있어야 한다. 특별히 교회 성도 간의 관계 문제를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신앙의 확증편향이나 앵커링 편향에 취약하여 다양한 인지 편향을 보이기 쉽고, 잘못된 정보의 과잉으로 인하여 신앙의 마비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인지적 문제는 타인과의 연합과 신뢰를 망가뜨려, 공동체성을 잃게 할 뿐만 아니라 개혁과 변화의 의지를 꺾는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리더는 성도를 적절하게 만나야 하고,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외부의 환경 변화에 대해서도 적절하게 대응해야 하는데, 과거에 효과적인 방법이 더는 통하지 않을 수 있으며, 구시대적 방식으로는 새로움과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방법과 과정에서 덜어내야 하는 것은 과감히 덜어내고,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면 신속하게 더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상황에 맞추어 생각과 결정을 변주할 수 있어야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서 기회를 잃지 않는 시야를 가질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잘 준비된 리더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작은 교회에서 잘했던 사람이 큰 교회에서는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보았고, 큰 교회에서 성과를 거둔 사람이 작은 교회에서 실패하는 때도 보았다.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는 머뭇거릴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행동할 줄도 알아야 하고, 의사결정을 도와야 할 때에는 나서기보다는 경청과 따뜻함으로 지지를 보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성숙한 리더는 손에 꼽을 만큼 귀하다.
다양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상황에 맞는 리더십을 가진 리더는 어떻게 준비될까?
그것은 리더가 올바르고 정직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는 교회의 상황에 따른 유연한 리더십이 요청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런 유연함과 함께 질문을 잘하는 리더여야 한다. 이는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서서, 비판적 사고를 통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이며, 더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한 필수적인 역량이다.
과거의 질문들
‘어떻게 하면 교회를 성장시킬까?’, ‘어떻게 해야 성도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을까?’, ‘어떻게 설교해야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가?’, ‘어떻게 해야 교회의 위기를 극복할까?’, ‘어떻게 해야 청년들을 교회에 나오게 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들은 오래전부터 반복하던 질문이다. 현상에 대한 표면적인 질문이고, 문제의 원인과 원인자에 대한 솔직한 질문이 아니라 리더의 책임 회피형 질문이다. 또한 문제의 해결에만 급급하여 교회의 미래를 위한 실천과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답’의 과잉 상태에 있다.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많은 세미나와 콘퍼런스가 열리고 있다. 설교세미나, 목회 세미나, 다음 세대 세미나 등 찾아보면 옳다고 주장하는 ‘답’이 많다. 자신이 가르치고, 전해주는 비법을 따르면 교회 개척도, 개혁과 변화도 거침없이 될 것이라 이야기하고, 실제로 좋은 결과를 가진 몇 가지 사례를 전시한다. 이런 ‘답’이 완전한 ‘오답’은 아니다. 단지 저 교회의 ‘답’이 나의 교회에도 ‘답이 되는가?’이다. 우리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답을 구별하고 판단할 지혜가 모자란 것이다.
성공적 개혁과 변화, 또는 개척을 지나 창립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단편적인 해답을 신뢰하게 한다. 과거로부터 반복된 질문과 해답의 방식은 우리의 시야를 좁고, 편향되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각 교회가 처한 환경에서의 적절한 대응을 놓치기 쉽고, 본질적인 개혁과 변화의 시점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알고 보면 환상에 빠진 것과 다르지 않다. 현재 상황을 자신이 통제하고 있어서 결국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새로운 문제와 갈등이 일어나게 되면, ‘해도 안된다’라는 패배감에 쉽게 빠지고. 무기력해지거나 아니면 도 다른 답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이 과정을 반복한다.
정직한 질문에서 변화가 시작한다.
교회 리더라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정직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존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생각과 상상을 여는 질문. 섣부르게 미래의 결과를 예측해 보려는 질문이 아니라 현재 교회 상황을 더 적나라하고,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갈등과 혼란을 멈추게 하고 성도의 사각지대를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이라면 더 좋다. 이로써 소외된 성도의 의견이 교회에 반영되도록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리더는 자기 성찰의 질문도 할 줄 알아야 한다. 현재 교회 문제의 원인에 리더 자신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듯이 타인과 외부를 향한 질문만 해서는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없다.
교회 문제를 다루면서 자신은 지난 회계 부정과 교회 운영에 있어서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 행동하는 이들을 자주 본다.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으나, 방관자의 책임을 가볍게 여기면서 자신이 개혁과 변화의 기수가 된 듯 행동하는 성도가 많다. 그들은 교회가 새로워지는 일에 리더로 활동하면서 다른 성도를 이끌어 간다. 교회는 과연 그들이 리더의 자질을 제대로 갖추었는지 진지하게 질문해야 한다. 자신을 향한 정직한 질문을 꺼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회피하거나 변명하기에 급급한 사람이 리더라면, 교회는 리더라 불리는 이로 인해 새로운 갈등과 혼란을 겪는 일을 맞이할 수도 있다.
교회 리더가 갖추어야 할 질문들
위기의 순간 또는 변화의 순간 리더는 어떤 질문을 가져야 할까. 몇 가지 질문을 제안해 본다. 이 질문이 리더십을 갖추는 시작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첫째,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교회의 사명이 무엇일까?”
교회에서 일어난 문제에 대하여 리더의 선택이 오류를 일으키는 이유는 리더의 ‘직관’과 ‘경험’만 의지했기 때문이다. 리더라면, 일어난 사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구분할 줄도 알아야 하고, 결과를 초래한 핵심 원인을 파악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판단 기준은 교회의 사명이어야 한다. 기준점은 변하지 않는 ‘가치’이며 ‘의미’다. 이것은 상황에 맞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선명해야 한다. 이 기준으로 복잡한 상황을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 리더라면 말이다.
교회의 사명과 가치를 지키는 것이 쉬운 듯 보여도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의심하고, 누군가는 왜 예전의 사람이 만든 사명과 가치를 따라야 하느냐고 저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작부터 이어온 각 교회의 고유한 사명을 분명히 하고 이를 기준으로 해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갈등과 혼란을 해결하는 열쇠다.
부천의 한 교회의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비전은 하나님으로부터, 운영은 민주적으로, 소유는 최소한, 나눔은 최대한” 해당 교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세 가지의 사명을 정리하는 데에는 교회 초기에 많은 진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정해진 사명은 이후 일어나는 교회 문제를 해결해 가는데 중요한 기준점이 되었다. 교회뿐만 아니라 각 가정과 개인의 비전이 사적인 탐욕에서 시작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인지 성찰하고, 민주적인 운영을 위하여 ‘민주’를 탐구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성숙해졌다. 나아가 재정에 있어서는 최소한의 소유에 대한 논의와 어떻게 하면 최대한 나눌 수 있을지를 매년 숙고하며, 교회 운영을 지탱해 왔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찌 위기가 없었을까. 아마 지금도 갈등과 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교회의 사명을 중심으로 위기를 대처하고 지혜를 모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변함없는 공동의 가치와 의미가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기준점이 될 때 교회의 소란이 잠잠해질 수 있다.
둘째, “또 다른 대안과 방법은 없을까?”
리더의 완고한 성품과 고지식함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자신이 가진 대안과 방법이 절대적이라 생각한다면 스스로 무덤에 내려가는 꼴이다. 포기할 수 없는 교회의 사명을 확인했다면 이에 대한 다양한 대안과 관점, 의견과 경험, 사례와 예시를 살피는 질문과 지혜가 필요하다.
과거 유사한 결정을 내린 교회의 현재는 어떠한지 살필 줄 알아야 하고, 우리 교회와 유사한 교회에서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다양한 선택지와 안을 마련하며, 예기치 못한 곳에서 주어지는 통찰에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리더는 학습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학습하는 일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지 않으면 결국 굳어지고 만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면서도 제대로 된 정보를 학습하는 일에 게으른 리더가 너무 많다. 다른 대안과 방법을 찾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음에도 스스로 포기한 리더는 변화와 개혁을 이끌 수 없다. 자기 생각이 정답이라 맹신하기에 더는 고민과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미래는 처참할 것이다.
셋째, 지금 선택한 방법이 1년 후에도 괜찮을까?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이 시간이 지나면 독이 되는 것도 있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장기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지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미래에 정확한 결과를 예측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의 사명을 재차 확인하는 방향성에 관한 이야기다.
교회는 편의와 효율성을 따라 생명의 가치를 소홀히 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떠해야 할지 다시 질문해야 한다. 편의와 효율성을 필요한 때가 있다. 그때는 효율성에 제한을 설정해서라도 우리의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예는 교회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교회 초기에는 재정이나 운영의 행정적 부담이 되더라도 1년 후에는 더 정밀한 체계를 갖추는 전환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리더라면 당장의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더라도 이후 지속성에 대한 시야를 잃은 근시안적 태도는 좋지 못하다.
넷째, 위기가 아니라 일상은 아닐까?
개척의 초기이든 개혁의 초기이든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낙관적인 마음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들은 단기적이지 않고 일상적인 것도 있다. 위기라고 생각하는 것도 단기적이지 않아서 파도처럼 계속 밀려오는 것일 수도 있다. 잦아든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밀려와 교회를 소란하게 만드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다가도 때가 되면 다시 교회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일’과 ‘사람’이 있다. 이것들에 대해서는 더 적극적인 리더의 중재가 요청된다.
목회자가 주기적으로 맘이 상해서는 ‘난 당분간 기도원에 가서 기도할 테니 당회 맘대로 하세요.! 예배든 뭐든 내 의견도 안 들어주는데 내가 필요하긴 합니까!’라고 말하거나, ‘목사님, 저는 아무래도 교회를 떠나야 할 것 같아요…’라고 시작하는 성도의 하소연이 일시적이 아닌, 반복될 때, 이는 단회적 위기가 아니라 일상이다.
이런 때에는 일어난 문제를 회복하고 치유하는 데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적응과 유연함 그리고 단호함이 요구된다. 또한 이런 반복적 이야기에 대한 원인과 내용을 더 분석하는 일이 필요하다. 나아가 이런 적응과 유연은 리더뿐만 아니라 다수의 성도가 함께해야 계속해서 밀려오는 파도를 탈 수 있다.
다섯째, 지금 꼭 결정해야 하나?
에드먼드 후설(Edmund Husserl)은 트랜센덴탈 현상학(Transcendental Phenomenology)을 통해 우리에게 “에포케(Epoché)“ 개념을 강조한다. ‘에포케’는 판단과 결정을 중지하는 것이며, 편견을 버리고 다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다
리더의 판단과 결정이 매번 옳을 수 없다. 그래서 잠시라도 결정을 미루는 것이다. 리더도 기존의 경험에서 오는 편견과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리더뿐만 아니라 교회 구성원 모두 각기 다른 경험, 생각, 지식, 감정을 가지고 지향하는 바가 있다. 이것을 후설은 ‘의식의 지향성’이라고 불렀다. 즉 이런 의식의 지향성이 판단에 오류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정과 선택을 잠시 유보하고 우리의 ‘가치’와 ‘의미’ 그리고 경험과 과정을 다시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리더는 교회 문제에 대한 ‘정답을 말해 주는 자’가 아니라 ‘함께 찾을 줄 아는 자’
복잡해지고, 다양하고, 불확실한 환경에서 앞으로 나아갈 ‘결정’을 내려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리더에게 있다. 그런데 기존의 가치관, 선입견 그리고 편향의 마음가짐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려고 한다면 오류를 피하기 어렵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들이 교회에는 분명히 있다. 우리는 그것을 진리라 부른다. 하지만 지키는 방법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누구는 실용적인 방식을 선호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전통적 방식이 가장 좋다고 여긴다. 그럴 때면 하나의 방식을 결정하고 따르기 전에 잠시 서로의 관점과 방식을 이야기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 필요하다.
교회는 정답을 주는 곳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곳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다. 정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학습하고 탐구하는 여정을 살아가는 것이 더 유익하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랴?’(마16:15),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21:15),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눅10:26)
오늘날의 리더도 다르지 않다. ‘질문’할 줄 알아야 하고, ‘질문’ 받을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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