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여성 안수 반대, 문자주의 숭배와 다름없다 (뉴스앤조이 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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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5-08-27 12:16 / 조회 1,114 / 댓글 0본문
내 가족(친척)은 대대로 기독교 가정이다. 외할아버지부터 내 손녀까지 모두 교회와 뗄 수 없는 관계로 살았다(살고 있다). 그리고 (모두 은퇴했지만) 외할아버지, 아버지, 외삼촌(들), 이모부(들), 형(들)은 장로고, 외할머니, 어머니, 숙모(들), 이모(들), 형수(들)는 권사였다. 이처럼 모든 남자는 장로며, 모든 여자는 권사다.
도대체 이 하나같은 흐름을 누가 결정했는가? 아무개 성도의 재능(은사)을 보고 교회공동체가 결정했는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목사, 장로는 남자 세례교인으로 무흠하게 7년을 경과한 자"(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헌법 교회 정치 제40조 1항, 제65조 1항)"란 자격 규정 때문이다. 이 법은 1890년대생인 내 외할아버지 때부터 2020년대 생인 내 손자 때까지 변함없이 이어졌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와 함께 교회 헌법은 많이 바뀌었다. 교회 조직뿐 아니라 교리 체계도 고치고 다듬어 왔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규정은 -내가 속한 예장고신과 내가 자란 예장합동에서는- 금과옥조처럼 바뀌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럴까? 장로교회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당회, 교회의 가장 중요한 예배와 정책을 결정하는 기관에 여성은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이 존재론적 규정은 왜 생겼으며, 이토록 굳건히 이어 오는가?
한 마디로 성경이 여자는 목사 장로로 안수할 수 없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딤전 2:11-15)는 이들이 붙드는 핵심 구절이다. 바울은 분명 (교회에서) "여자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으며"(고전 14:34),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하라"(딤전 2:12)고 말한다. 하지만 잘 살펴보라. 바울은 동시에 여자가 교회에서 기도(예언)할 수 있음을 전제하며, 단지 '머리에 무엇(수건)을 쓰고' 하라고 권면한다.(고전 11:5)
또 바울은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전 14:35)고 말하지만, (늙은) 여자에게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라"(딛 2:3-4)며 공적 가르침을 권면한다. 단지 바울이 여성에게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했던 것은 몇몇 여성의 과도한 발언과 주장이 교회를 어지럽혀 하나님의 복음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한 혼란은 싹이 돋아나는 초기 기독교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바울에게 복음의 길이 이 일로 가로막히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가 방언보다 예언을 높이 평가한 이유도 교리적 판단이라기보다 복음 전파 때문이었다.(고전 14:23)
"여자는 잠잠하라"는 말은 절대적 권면이 아니라, 그 교회의 상황이었다. 여성 안수를 금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님이 분명하다. (이외에도, 성경은 여성 안수가 정당하다고 말한다)
오래전 교회 청년들에게 성경을 통한 여성에 대한 몇 번의 강의를 마친 후, 여성 안수를 금한다는 이런 교단 헌법 규정이 있다고 들려주었다. 그러자 청년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반응했다. "목사님, 그런 법이 어딨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그 교회에 안 다닐 거예요!"
평화교회가 2022년 예장고신 총회에서 여성 안수 도입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교회마다 내건 표어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자주(많이) 본 표어는 '다음 세대를 위한 교회'였다. 그렇다, 우린 현재보다는 다음 세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성 안수제는 다음 세대를 위해 반드시 시행해야 할 제도다. 우리가 여전히 여성 안수의 현실을 외면한 체, 교회가 다음 세대를 위한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그것은 '뒷일은 몰라'라는 무책임한 태도다.
바울 시대에 일부 여성의 과도한 주장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복음을 방해했다면, 오늘은 여성 안수 금지가 교회를 침체하게 하고 복음 전파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바울 시대에는 그들의 무질서와 지나침이 사람들로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가로막았다면, 오늘에는 여성들의 수동성(여성 안수 금지)을 강요하는 제도가 복음 전파를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함을 명심하자.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그때와 전혀 다른 상황에서 '복음에 참여하고' 있다. 여성 안수 제도는 시류에 영합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말과 행동은 오직 "복음에 참여하는 데 있고"(고전9:23) 모든 성경의 저자들이 각자의 상황에서 복음 실천을 위해 씨름했듯, 이것은 성경을 바르게 읽고 그것을 시대에 맞게 새롭게 실천하려는 노력이다.
"장애자 목사 안수 제한을 해제하고 목사 안수하기로 하다." 예장고신 제38회 총회록(1988년)에 있는 결의 사항이다. 지금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때까지 교회는 장애인에게 목사 안수를 제한했다는 말이다. 교회는 성경의 근거를 들어(아마 레 21:21-23등) 장애인 차별을 정당화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문자(숭배)주의의 오류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의식이 진보했고 이것이 우리로 잘못된 결의를 바로잡게 했던 것이다. 곧 시대의 자극을 통해 우리는 성경을 다시 보게 사실 성경은 처음부터 장애인의 목사 안수를 제한한 적이 없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오늘 교단이 근거하는 일부 여성 안수에 대한 구절들 또한 그런 한계요 오류일 뿐이다.
"여성 안수 제도"는 오늘 교회가 반드시 제정해야 할 제도이다. 이를 통해 여성들이 교회 활동에 책임감 있는 주체로 참여하고, 교회는 활력을 얻을 것이다. "모든 남자와 여자에게 임하리라" 한 성령이(행 2:18) 고린도교회에 임했듯이, 오늘도 성령은 남녀 모두에게 차별 없이 임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성령)를 입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교회 지도력을 허용하는 것은 복음의 원리이다. 그들은 교회의 지도자로서 능히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있다.
한성국 / 부산평화교회 은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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